세진의 코딩과 일상 이야기
새로운 시작 본문
벌써 뉴욕으로 석사를 오고 졸업을 하고, 첫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났다. 석사 2년, 일한 지 3년, 총 5년 동안 미국에 있었다. 그전에 대학생 때 교환학생, 그리고 9개월 동안 캘리포니아에서 인턴을 했던 기간까지 합치면 거의 20대의 6년을 미국에서 보냈다. 말레이시아에 9살에 가서 20살에 한국에 왔고 25살까지 있었으니, 사실 이제는 한국이 더 외국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6년 넘게 미국에 살아보니 미국이 내가 생각한 것처럼 완벽한 나라는 아니라는 걸 배웠다. 길거리에 항상 보이는 노숙자들과 약에 찌든 사람들, 그리고 간혹 동네에서 들려오는 총소리까지... 하지만 그걸 다 알고 나서라도 다시 미국에 가겠냐고 물어보면 항상 내 답은 '예스'다. 그만큼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유롭고, 또 성공하고 싶은 사람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시작하고 정부가 바뀌면서 이민 정책이 수시로 바뀌었다. 특히나 유학생들은 OPT라는 학생비자를 받고 3년 동안 일할 수 있는데, 그 기간 동안 H1B라는 로터리 방식으로 받는 비자를 신청하게 된다. 그것이 지난 2년간 확률이 극적으로 낮아졌고, 주변에 아무도 된 사람이 없을 만큼 힘들었다. 작년엔 특히 100K fee를 적용하면서 유학생들에겐 더더욱 힘들어졌다. 다행히 100K fee가 F1 학생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이후에 정부가 더 자세히 발표하면서 한숨 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선 더 이상 H1B를 스폰해 줄 수 없다고 나에게 말했다. 사실 크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도 아닌 게, 요즘 CS를 졸업하고도 취직 못 하는 미국인들이 엄청 많기 때문에 나를 스폰해 줄 돈으로 자국민을 뽑는 게 사실 더 맞는 선택이라고 나조차도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회사는 대신 영국 비자를 스폰해줘서 런던 오피스로 옮길 기회를 줬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미국에 어떻게 더 있을 수 있을지 알아봤었다. 다시 석사를 다닐까? Cap-Exempt H1B를 알아볼까? O-1? NIW? 하지만 이런 옵션들도 다 너무 힘들어 보였고, 영주권을 받기가 너무 어려워진 상황에서 더 이상 미국 비자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나라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회사로 이직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난 런던, 싱가포르, 대만, 독일, 그리고 한국 등 여러 곳에 지원했다. 확실히 느낀 건 내가 미국에서 경력과 석사가 있어서 그런지 미국보다 서류 통과가 더 잘됐던 것 같다. 미국에선 먼저 연락이 온 회사에서도 내 비자 상태를 이야기하면 갑자기 연락이 끊기거나, 심지어 오퍼가 취소된 적도 있었다. (작년에 코인베이스에서 버벌 오퍼를 받았지만 OPT 비자라고 하자 취소된 적이 있었다.) 반면 다른 나라에선 "응, 비자는 문제 안 돼."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1월부터 본격적으로 리쿠르팅을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빅테크 싱가포르 오피스의 오퍼를 받았다. 너무 가고 싶던 회사기도 하고, 어렸을 때 살았던 말레이시아와 가까운 싱가포르라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오퍼를 수락하고, 전 직장에서 런던 오피스로 옮기는 비자 프로세스를 시작하기 전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난 그렇게 4월 중순에 미국을 떠나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9년 넘게 살면서 익숙해진 동남아 날씨라 생각했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너무 덥게 느껴졌다. 그리고 특이하게 오리엔테이션을 런던에서 하게 되어, 싱가포르에서 회사 랩탑만 받고 바로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오리엔테이션 3일 차에 해커톤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회사 리쿠르터에게 전화가 왔다. 며칠 전에 봤던 면접 결과가 좋았다는 거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다른 회사에서 오퍼를 받게 되었다. 우연하게도 그건 또 다른 빅테크의 런던 오피스 오퍼였다. 이 회사 또한 코딩을 공부할 때부터 쭉 일해보고 싶던 곳이었기 때문에 믿기지 않았다. 사실 3년 넘게 이직하고 싶어서 리쿠르팅을 항상 해왔지만, 매번 파이널에서 떨어지거나 오퍼가 취소됐었다. 웃기게도 막상 미국을 떠나 다른 나라를 알아보기 시작하니, 짧은 기간 안에 늘 가고 싶던 두 곳에서 모두 합격하게 된 것이다. 둘 다 너무 좋은 기회라 고민이 됐지만, 결국 다시 이직하기로 결정하여 바로 영국 비자를 신청했고 두 달 뒤 퇴사한 후 런던으로 옮기게 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 이직을 두 번이나 하고 살 거니를 두 번이나 바꾸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인생은 참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없는 것 같다.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었지만 비자 문제 때문에 이렇게 또 다른 나라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해외에 살면서 얻은 큰 장점 중 하나는 이런 변화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단단해지는 나 자신이다. 5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번에 직장에서 비자 스폰을 안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단 하루만 슬퍼한 뒤 바로 리쿠르팅을 시작한 내 모습을 보며 나 스스로도 놀랐다. 앞으로도 타국에서 외노자로 일하며 힘든 일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또다시 일어설 자신이 있다. 이로써 나의 미국 생활은 끝이 났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게 될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나를 이렇게 단단하게 만들어 준 고마운 나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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